‘Heteroflexible’ — 요즘 이 단어가 자꾸 눈에 밟힌다.
찾아보니 Z세대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성정체성이었다.
📖 프롤로그
요즘 이 단어를 너무 자주 본다. 헤테로플렉시블.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고, 트위터 타임라인에 흘러가고, 해외 기사 제목에 박혀 있다.
처음엔 그냥 스크롤했다. 두 번째도. 근데 세 번째쯤 되니까 슬슬 궁금해졌다. 대체 뭔데 이렇게 자주 나와?
이성애자도 아니고 바이섹슈얼도 아니라는 건가? 그 사이 어딘가? 뭔가 애매하게 들리는데, 진짜 학술적으로도 인정받는 개념인 건지.
📊 킨제이 스케일: 이미 1948년에 알고 있었다
우리는 보통 성적 지향을 이분법으로 생각한다. 이성애 아니면 동성애. 스위치처럼 켜져 있거나 꺼져 있거나.
하지만 1948년, 성 연구의 선구자 앨프리드 킨제이는 이런 이분법을 거부했다.
킨제이는 수천 명의 미국 남성을 인터뷰한 뒤, 성적 지향이 스위치가 아니라 스펙트럼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가 만든 ‘킨제이 스케일’은 이렇게 생겼다:
| 점수 | 설명 |
|---|---|
| 0 | 완전히 이성애 |
| 1 | 대부분 이성애, 가끔 동성에게 끌림 |
| 2 | 대부분 이성애, 동성에게 가끔 이상의 끌림 |
| 3 | 이성과 동성에게 동등하게 끌림 |
| 4 | 대부분 동성애, 이성에게 가끔 이상의 끌림 |
| 5 | 대부분 동성애, 가끔 이성에게 끌림 |
| 6 | 완전히 동성애 |
킨제이의 핵심 발견은, 0 아니면 6에 딱 떨어지는 사람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거였다. 1940년대에 이미 그걸 밝혀냈다.
그때도 그랬다면, 지금은 어떨까? 😮
🌱 헤테로플렉시블의 탄생
킨제이 스케일에서 1점에 해당하는 사람들. “대부분 이성애, 가끔 동성에게 끌림.”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오랫동안 이 집단은 이름이 없었다. 이성애자 아니면 바이섹슈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둘 다 맞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 Heteroflexible (헤테로플렉시블): 대부분 이성애지만 유연함
- Mostly Straight (대체로 이성애): 학술적으로 더 자주 쓰이는 표현
- Bicurious (바이큐리어스): 동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이 중 “헤테로플렉시블”이 Z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mostly straight”를 고르는 사람이 많다. 갤럽(Gallup)이나 PRRI 같은 대규모 조사를 보면, Z세대에서 “대체로 이성애”라고 답하는 비율이 이전 세대보다 뚜렷하게 높다.
그리고 데이팅 앱 Feeld의 2025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헤테로플렉시블”을 선택하는 사용자 수는 전년 대비 193% 성장했다. 어떤 성정체성 범주보다 빠른 속도다. 🤯
📈 왜 지금 폭발하는 걸까?
세 가지 가설이 있다.
가설 1: 사회적 허용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도 괜찮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트웬지와 동료들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2010년대 미국인 중 동성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990년대보다 확 늘었다.
특히 여성 사이에서.
연구자들은 이 변화가 “실제 성적 지향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수용 증가로 인한 보고 증가”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즉, 예전에도 헤테로플렉시블한 사람들은 있었다.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
가설 2: 언어의 등장
이름이 생기면 정체성도 생긴다.
“헤테로플렉시블”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이성애자인데 가끔 동성한테 끌려”라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그럼 넌 바이야”라고 규정해버렸다.
하지만 그건 맞지 않았다.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경험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언어가 정체성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언어가 정체성을 드러나게 하는 건 사실이다.
가설 3: 성적 유동성의 정상화
‘성적 유동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성적 끌림과 행동이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주로 여성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캐츠-와이즈(Katz-Wise, 2015)의 연구에서는 남성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적 끌림의 변화를 경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알려지면서, “평생 고정된 성적 지향”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새로 헤테로플렉시블이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 헤테로플렉시블은 “진짜” 정체성인가?
트위터에서 가끔 본다.
“헤테로플렉시블? ㅋㅋ 그냥 바이인데 겁나서 못 나오는 거잖아.”
또는
“이성애 혜택은 다 누리면서 퀴어 코스프레하는 거 아냐?”
이런 비판. 읽을 때마다 찔린다.
학술적으로는 어떨까?
세이빈-윌리엄스와 브란갈로바의 2013년 연구는 “mostly heterosexual”이 독자적인 성적 지향 범주인지 검증했다. 결론:
“Mostly heterosexual은 완전한 이성애와도, 바이섹슈얼과도 구별되는 독자적인 범주다.”
이 집단은:
- 완전한 이성애자보다 동성에 대한 끌림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 바이섹슈얼보다 동성에 대한 끌림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 성적 행동, 판타지, 로맨틱 끌림 모든 측면에서 중간 지점에 위치했다
연구자들은 결론지었다. 헤테로플렉시블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과도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안정적인 성적 지향이라고.
이 결론이 흥미로웠다. 😮💨
“대부분 이성애”라는 게 게이도 아니고, 바이섹슈얼도 아닌 거다. 그냥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 있는 것.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이라는 거다.
🤔 그래서 이게 왜 중요할까?
자료를 읽다 보니 스스로에게도 질문하게 됐다. 잘생긴 남자를 보고 “잘생겼다”고 느끼는 건 미적 감탄일까, 끌림일까?
그 경계가 생각보다 흐릿하다.
아마 많은 사람이 킨제이 스케일에서 완전한 0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확신 못할 거다.
근데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최근 연구들은 성적 지향을 단일 축이 아닌 다차원적 개념으로 보기 시작했다:
- 성적 끌림: 누구와 섹스하고 싶은가
- 로맨틱 끌림: 누구와 사랑에 빠지고 싶은가
- 성적 행동: 실제로 누구와 섹스하는가
- 성적 정체성: 스스로를 뭐라고 부르는가
이 네 가지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남녀 모두에게 성적으로 끌리지만, 로맨틱하게는 여자에게만 끌린다. 어떤 사람은 이성과만 섹스하지만, 동성에 대한 끌림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하지만, 실제 성적 경험은 이성과만 있다.
복잡하다. 이거 정리하다가 나도 헷갈렸다. 근데 뭐, 인간이 원래 깔끔하게 분류되는 존재였던 적이 있었나. 사랑의 형태도 마찬가지다. 😌
이것도 읽어볼 만하다. → 바람 아닌 바람: 폴리아모리와 ENM의 심리학
✨ 마무리
처음엔 그냥 자주 보이는 단어가 궁금해서 찾아봤을 뿐이다.
근데 파고들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이성애와 동성애, 그 사이에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애매한 영역에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는 것.
세대가 젊어질수록 스스로를 “대체로 이성애”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계속 가속 중이다.
헤테로플렉시블이라는 단어 하나가 이 모든 걸 설명하진 못할 거다. 어쩌면 어떤 단어도 사람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단어는 이렇게 말해준다:
“0 아니면 1이 아니어도 괜찮아.”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FAQ
Q1. 헤테로플렉시블과 바이섹슈얼의 차이는 뭔가요?
A. 바이섹슈얼은 보통 남녀 모두에게 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헤테로플렉시블은 “대부분” 이성에게 끌리고 동성에 대한 끌림은 “가끔” 또는 “약간”입니다. 끌림의 비율이 다릅니다. 물론 어디까지가 “대부분”이고 어디서부터 “동등”인지는 주관적입니다. 스스로가 어느 쪽에 더 맞다고 느끼는지가 중요합니다.
Q2. 헤테로플렉시블은 일시적인 성적 지향인가요?
A. 연구에 따르면, “mostly heterosexual”은 과도기가 아니라 안정적인 성적 지향입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바이섹슈얼 쪽으로 이동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평생 헤테로플렉시블로 남습니다. 중요한 건, “과도기니까 진짜가 아니다”라고 단정 짓는 건 잘못된 것입니다.
Q3. 남자도 헤테로플렉시블일 수 있나요?
A. 물론입니다. 성적 유동성이 여성에게만 해당한다는 건 오래된 편견입니다. 캐츠-와이즈의 2015년 연구는 남성도 성적 유동성을 경험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사회적 압력 때문에 남성이 이를 인정하거나 표현하기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