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섹스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전두엽의 활동이 잠시 줄어드는 그 몰입의 찰나만큼은, 감정과 쾌락이 이성보다 앞서고,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걸 감추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기를.
그녀는 왜 가짜로 올랐을까?
자위를 하는 여자를 가까이서 봤다.
자기 몸을 만지고, 스스로를 느끼고, 스스로를 올라가게 만드는 그녀의 오르가슴은…진짜였다.
그걸 본 순간, 지난날 가짜로 오르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땐 몰랐다. 그래서 그냥 좋았다. 같이 느낀 것 같고, 내가 잘한 것 같아서.
지금의 나는 그게 진짜인지 연기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그녀의 허리를 움켜쥔 내 손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 그녀가 갑자기 신음을 높이고 몸을 떨 때, 나는 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오르는 방식이나 표현도 다르다. 하지만 너무 ‘연기’ 같은 건 이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오르가슴은 생각보다 많다.
처음엔 속상했고, 자책했다.
‘내가 못해서 그런 건가?’ ‘내가 너무 빨리 끝냈나?’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올랐니, 안 올랐니. 끝났니, 안 끝났니. 그 질문은 때로는 죄책감을 낳고, 때로는 방어를 부른다.
대신 나는, 연기라는 그 선택의 내막이 궁금했다.
오르가슴을 연기한 이유
2024년, 유럽 6개국 11,541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64%의 여성, 35%의 남성이 오르가즘을 연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오르가즘을 느끼기 어렵거나 자주 경험하지 못할 때
- 파트너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 파트너에게 성적으로 즐거운 경험을 주고 싶어서
- 성관계를 빨리 끝내고 싶어서
- 오르가즘에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서
- 파트너를 흥분시키거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이건 단지 성적 쾌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트너의 만족을 위한 선택이었고,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는 전략이었다. 오르가즘을 연기한 건 ‘나의 좋음‘이 아니라, ‘관계 좋음’을 위한 사회적 연기였던 거다.
가짜 오르가슴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 연구에 의하면 성적 정직성은 침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삶의 만족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 오르가즘을 속이는 행동은 성적 만족도, 관계 만족도, 삶의 만족도 모두에 유의미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 현재 속이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속였던 사람들보다도 모든 만족도가 더 낮았다.
- 한 번도 속인 적 없는 사람들과 과거에 속였다가 멈춘 사람들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즉, 현재 속이는 중인지 아닌지가 만족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 결과는 오르가슴 연기가 순간의 거짓말 아니라, 관계 전반의 불만족을 숨기는 방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르가슴을 연기를 멈춘 이유
그렇다면 오르가슴을 속이던 사람들이 연기를 멈추게 된 이유는 뭘까?
이 연구는 그 변화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해도 괜찮다는 편안함을 갖게 되면서
- 성적 파트너와 더 많이, 더 솔직하게 소통하게 되면서
- 파트너가 나의 욕구와 선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성별에 따른 차이도 있었다:
- 여성은 ‘오르가슴을 못 느껴도 괜찮다’는 편안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 남성은 자신감이 생겼거나, 속이는 것이 들통났거나, 아예 더 이상 성적으로 활동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멈췄다고 답했다.
즉, 더 솔직해졌기 때문에 멈춘 게 아니라, 편안해졌기 때문에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편안함은, 더 나은 성적 만족과 삶의 만족으로 이어졌다.
그 몰입의 찰나만큼은…
1년 전, 그녀가 오르가슴을 연기하기 시작했을 때, 진짜로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걸 말하지 못했다는 상황이 더 슬펐다.
성관계는 소통이라고 배웠다. 몸과 감정이 동시에 오가는 대화라고 믿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적나라한 순간에, 가장 깊은 것을 숨겼다.
사회는 ‘좋은 섹스’에 대한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면 실패라고 말한다. 오르가슴이 없으면 부족한 관계처럼 여겨지고, 성적 정직함보다 비뚤어진 예의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오르가슴을 말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선의의 거짓말이었을지 모른다. 관계를 지키기 위한 배려.
하지만 나는 바란다.
적어도 섹스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전두엽의 활동이 잠시 줄어드는 그 몰입의 찰나만큼은, 감정과 쾌락이 이성보다 앞서고,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걸 감추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기를.
- Silvia Pavan, Camilla S. Øverup & Gert Martin Hald(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