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내가 빨랐고, 그녀는 늘 “아직”이라 말했다.
지금은 천천히 섹스하는 걸 즐긴다.
그게 서로에게 더 잘 닿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 안다.
“서두르지 않아서좋아요.”
최근에 만난 여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천히 섹스하는 걸 즐긴다. 긴 대화, 긴 애무, 삽입은 더 천천히. 이제는 그게 서로에게 좋다는 걸 안다. 이론적으로도, 체험적으로도.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20대 때의 섹스는 늘 찜찜했다. 나는 빨리 흥분했고, 금방 끝났고, 그녀들의 반응은 늘 아리송했다.
‘좋은 건가?’ ‘싫은 건가?’ ‘끝난 건가?’
나는 확신하지 못했고, 그녀들은 말하지 않았다.
‘느리다’는 질문 자체가 틀렸다
사람들은 흔히 남자가 더 빨리 흥분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성은 느리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Masters & Johnson (1966)은 성적 반응을 욕망 → 각성 → 극치 → 이완으로 이어지는 선형 구조로 설명했다.
이 모델은 꽤 오랫동안 표준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실제로는 남성의 반응 패턴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늘 ‘예외’처럼 다뤄졌고, 그 오해는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여성의 각성은 단순히 늦은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 다르다.
Basson의 원형 모델(2000)은 이 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여성의 성욕은 갑작스러운 자극보다는 감정적 연결, 관계의 흐름, 심리적 안정에서 시작된다. 쾌감은 뒤따라오는 것이다. 욕망이 먼저가 아니라, 맥락이 먼저인 구조다.
의외로 신체의 반응은 비슷했다
2007년,Kukkonen과 Meston은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남성과 여성의 성적 흥분 반응을 비교했다. 참가자들은 성적 영상과 중립 영상을 시청했고, 연구진은 성기 주변 피부의 온도 변화를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수치상으로는 약간의 편차가 있었지만 여성과 남성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여성과 남성 모두 자극 시작 후 평균 2~3분 내에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10분 동안 꾸준한 흥분 반응이 관찰되었다. ‘신체’의 반응 속도는 사실상 같았던 것이다.
즉, 여성의 몸이 늦은 게 아니었다.
자극은 도달했지만, 쾌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2010년, 치버스(Chivers) 연구팀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던졌다. 다양한 성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132편의 연구를 검토한 결과, 여성의 경우 생리적 흥분 반응과 자기보고된 주관적 흥분 사이의 일치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 드러났다. 몸은 반응했지만, 마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의 뇌는 자극 자체보다 자극의 맥락, 감정의 연결, 상황의 안정성을 먼저 평가한다. ‘쾌감’은 곧바로 느끼는 게 아니라,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이다.
그녀들이 말한 “아직”은, 연결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도 느린 사람이 되었다
나는 예전보다 많이 느려졌다. 천천히 만지고, 오래 머문다. 그게 상대를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지금은 그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안다.
섹스를 하면서, 우리는 자꾸 서로의 속도를 재려고 한다. 누가 빠른가, 누가 느린가, 누가 더 준비됐는가. 그런데 이젠 안다. 같은 시간에 출발해도, 각자의 리듬으로 도착한다는 걸.
그리고 어떤 밤은, 그 차이를 조율하는 그 과정 자체가 더 깊은 섹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밤은, 그 조율, 너무 어려울 때도 있다…🙄
- Kukkonen, K. E., & Meston, C. M. (2007), Thermography as a physiological measure of sexual arousal in both men and women
- Chivers et al. (2010), Agreement of self-reported and genital measures of sexual arousal in men and women: a meta-analysis
- Basson, R. (2000), The Female Sexual Response: A Different 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