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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섹슈얼이란? 성욕 없어도 정상일까

에이섹슈얼이란? 성욕 없어도 정상일까

성적 끌림이 없다. 고장 난 게 아니다.

섹스에 관심 없다는 여자를 만났다.
문제를 찾으려 했다.
문제를 찾으려 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

🍺 그녀가 섹스에 관심 없다고 했을 때

“나는 섹스에 관심이 없어.”

그녀가 말했을 때, 나는 맥주를 마시다 사레들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아니, 농담이길 바랐다.

우리는 세 번째 데이트 중이었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으며, 내 뇌는 이미 오늘 밤의 시나리오를 세 가지쯤 그려두고 있었다. (스포일러: 전부 폐기됐다.)

“진짜로?”

“응. 진짜로.”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으려 했다.

장난? 테스트? 트라우마? 아니면 나를 싫어하는 건가? 내 머릿속은 급히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고쳐야 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문제를 찾으려 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걸 몰랐으니까.

나는 그때 성욕이 인간의 기본값이라고 믿었다.

숨 쉬고, 밥 먹고, 섹스하고 싶은 것. 그게 사람 아닌가. 그래서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나는 배고프지 않아”가 아니라 “나는 숨 쉬고 싶지 않아”처럼 들렸다.

내 세계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웃었다.

“자주 이런 반응이야. 괜찮아.”

괜찮다고? 나는 괜찮지 않았는데.

그날 밤, 나는 혼자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발기도 되지 않았다. 내 뇌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욕이 없다는 게 가능한가? 그건 병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그녀가 나를 좋아하긴 하는 걸까?

그리고 가장 낯선 질문 하나.

성욕이 없는 것도, 정상일 수 있을까?

🔍 성욕과 성적 끌림은 다르다

발기는 해도 끌림은 없을 수 있다.

에이섹슈얼.

에이섹슈얼은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욕망에도 스펙트럼이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성욕’과 ‘성적 끌림’의 구분이다.

성욕은 신체적인 욕구, 그러니까 발기하고 싶고 자위하고 싶은 그 생리적 충동이다.

성적 끌림은 특정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감정이다.

에이섹슈얼은 성욕 자체가 없는 게 아닐 수 있다. 그들도 자위할 수 있고, 신체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과 섹스하고 싶다”는 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이 구분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다.

나는 성욕과 성적 끌림을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발기하면 누군가가 떠올랐고, 누군가를 보면 발기했다. 내게 이 둘은 같은 회로였다.

마치 전등 스위치처럼 – 켜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누군가 거기 있는 식이었다.

그런데 에이섹슈얼에게는 이 회로가 다르게 작동한다. 엔진은 돌아가는데, 목적지가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목적지가 필요 없는 것이다.

2001년, 데이비드 제이라는 청년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웹사이트 하나를 만들었다. AVEN. 무성애 가시화 및 교육 네트워크.

그는 스스로를 에이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한 최초의 공개적 활동가 중 하나였다.

제이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에이섹슈얼이 정당한 성적 지향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 둘째, 고립된 에이섹슈얼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

2002년 5월, AVEN에 포럼이 생겼다. 두 달 만에 회원이 100명을 넘었다. 2021년에는 13만 5천 명이 넘는 회원이 이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에이섹슈얼 온라인 커뮤니티다.

나는 그 숫자에 멈췄다. 13만 5천 명. 그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래”라고 말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의 가장 아름다운 기능은 이거다 – 세상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 그레이섹슈얼, 데미섹슈얼

에이섹슈얼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에이섹슈얼은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라는 것.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래서 훨씬 흥미롭다.

2022년, 『Current Psychology』에 실린 연구가 있다. 수와 정(Su & Zheng, 2022)이 진행한 이 연구는 중국의 성소수자 873명을 대상으로 성적 정체성을 분석했다.

레즈비언/게이, 바이섹슈얼,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한 사람들의 정체성 경험을 비교한 것이다.

우선 용어 정리.

  • 에이섹슈얼: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
  • 그레이섹슈얼: 성적 끌림을 드물게, 또는 낮은 강도로 느끼는 사람.
  • 데미섹슈얼: 강한 정서적 유대가 형성된 후에야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성적으로 끌리지 않지만, 깊이 알게 되면 끌릴 수 있다. 슬로우 버너라고 할까. 불은 붙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다.

결과가 좀 씁쓸했다.

에이섹슈얼은 레즈비언/게이보다 정체성 불확실성과 은폐 동기가 유의미하게 높았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려는 경향이 강했다는 뜻이다.

정체성 불확실성 비교 (5점 척도, 높을수록 불확실)

에이섹슈얼 (M=2.44)

49%

바이섹슈얼 (M=2.27)

45%

레즈비언/게이 (M=1.83)

37%

Su & Zheng (2022), n=873

근데 좀 의외였던 건, 에이섹슈얼과 바이섹슈얼의 패턴이 비슷했다는 거다.

둘 다 레즈비언/게이보다 정체성 관련 수치가 안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에이섹슈얼은 바이섹슈얼보다 ‘정체성 형성 과정의 어려움’이 낮았다.

연구진은 이를 흥미롭게 해석했다. 에이섹슈얼은 성적 끌림이 없다는 사실 자체에 크게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별 차이도 있었다. 남성 성소수자 쪽이 여성보다 전반적으로 더 힘들어했다.

특히 내면화된 동성애 혐오와 정체성 형성의 어려움에서 남성 쪽이 더 심했다.

나는 이 연구를 읽으며 처음으로 이해했다. 성적 끌림이라는 게 온/오프 스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그건 조광 스위치다. 어떤 사람은 항상 어둡고, 어떤 사람은 가끔 밝아지고, 어떤 사람은 특정 조건에서만 밝아진다.

나는 세상 모든 조명이 형광등인 줄 알았는데, 무드등도 있고 센서등도 있고 캔들도 있었던 거다.

🧠 인구의 1%라는 숫자 – 뇌과학은 뭐라고 할까

에이섹슈얼이 실제로 얼마나 있을까.

2015년 스티븐슨(Stevenson, 2015)이 『Psychology of 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Diversity』에 발표한 리뷰에 따르면,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하는 사람은 대체로 인구의 1% 이하다.

1퍼센트.

처음에는 적어 보였다. 하지만 계산해보면 다르다. 한국 인구가 약 5천만 명이라면, 50만 명이 에이섹슈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내 옆에 앉은 100명 중 1명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1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스티븐슨은 에이섹슈얼 연구의 핵심 질문들을 정리했다.

에이섹슈얼은 성적 지향인가? 임상적 진단(저활성 성욕 장애)과 어떻게 구분하는가? 정치적 정체성으로 볼 수 있는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구분이다. 에이섹슈얼이 건강이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닐 수 있다.

에이섹슈얼로서 사회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고립이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에이섹슈얼이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감추고 살아가는 대가일 수 있다.

신경과학 연구는 어떨까.

솔직히, 에이섹슈얼의 뇌를 연구한 논문은 많지 않다. 그래도 몇몇 시도는 있었다.

2014년, 프라우즈와 하렌스키는 에이섹슈얼의 뇌를 fMRI로 찍은 파일럿 연구를 진행했다. 제목이 인상적이다.

“Inhibition, Lack of Excitation, or Suppression: fMRI Pilot of Asexuality.”

억제인가, 흥분의 부재인가, 아니면 억압인가.

이 연구는 에이섹슈얼이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탐구했다.

  • 첫째, 억제. 성적 반응이 활성화되지만, 뇌의 다른 부위가 그걸 억누르는 것. 가속 페달을 밟는데 브레이크도 같이 밟고 있는 상태.
  • 둘째, 흥분의 부재. 애초에 성적 자극에 반응하는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것. 가속 페달 자체가 연결이 안 된 상태.
  • 셋째, 억압. 의식적으로 성적 반응을 통제하는 것. 일부러 브레이크를 밟는 상태.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샘플 사이즈가 작았고, 후속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연구가 던진 질문은 중요하다. 에이섹슈얼은 욕망을 억누르는 게 아닐 수 있다. 애초에 그 회로가 다르게 배선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 욕망의 부재도 정체성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성욕이 없는 것도 정상일까?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이제는 안다. 질문에 이미 편견이 들어 있었으니까.

‘정상’이라는 단어가 문제다. 정상은 평균을 의미하기도 하고, 바람직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통계적으로 에이섹슈얼은 소수다. 1% 정도.

하지만 소수라고 해서 비정상은 아니다. 왼손잡이도 10%다. 그들이 비정상인가?

빨간 머리카락도 1-2%다. 우린 그걸 ‘희귀한 머리색’이라고 하지, ‘머리색 장애’라고 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 이걸 쓰면서 나한테도 계속 되뇌는 건데 – 에이섹슈얼은 ‘고장 난’ 게 아니라는 거다.

2017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브로토와 율(Brotto & Yule, 2017)은 《Archives of Sexual Behavior》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Asexuality: Sexual Orientation, Paraphilia, Sexual Dysfunction, or None of the Above?”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그들은 에이섹슈얼이 오랫동안 ‘저활성 성욕 장애(HSDD)’로 의료화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DSM이 성적 욕구의 부재를 병리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물었다. 에이섹슈얼을 정신과적 증후군이나 성기능 장애로 분류할 근거가 충분한가?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 치료가 필요한 ‘장애’라고 할 수 있는가?

브로토와 율은 중요한 구분을 강조했다. 성욕과 성적 끌림은 다르다.

에이섹슈얼도 성욕을 느낄 수 있고, 자위를 할 수 있다. 다만 그 욕구가 특정 대상을 향하지 않을 뿐이다. 자위는 혼자 하는 행위이므로 에이섹슈얼의 정의와 모순되지 않는다.

또한 에이섹슈얼은 금욕이나 독신과도 다르다. 금욕은 성적 끌림을 느끼면서도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다. 에이섹슈얼은 억제할 끌림 자체가 없다.

나는 그녀가 괴로워했는지 모른다.

아마 괴로워했을 것이다.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자주 이런 반응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왜 섹스를 안 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치료는 안 받아봤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했을 것이다.

에이섹슈얼은 성적 지향이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처럼. 타고난 것이고,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욕망의 부재도 하나의 정체성이다. 결핍이 아니라 차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성욕이 사라지는 때가 있다. 피곤할 때, 우울할 때, 혼자 있는 게 편할 때.

그럴 때면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는 항상 그런 상태였던 건가. 아니면 그녀에게 그건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었던 건가.

아마 후자일 것이다.

욕망이 있는 나는, 욕망이 없는 그녀를 상상하지 못했다.

 

Q&A

Q. 성욕은 있는데 끌림이 없으면 에이섹슈얼인가요?

A. 가능합니다. 에이섹슈얼은 ‘성욕'(생리적 욕구)과 ‘성적 끌림'(특정 대상을 향한 감정)을 구분합니다. 자위하거나 신체적 쾌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특정 타인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경우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Q. 에이섹슈얼은 연애나 결혼을 안 하나요?

A. 아닙니다. 정서적·로맨틱한 끌림은 성적 끌림과 별개이기 때문에, 에이섹슈얼도 연애, 결혼,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관계의 중심에 섹스를 두지 않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Q. 데미섹슈얼, 그레이섹슈얼과 어떻게 다른가요?

A. 데미섹슈얼은 강한 정서적 유대 이후에만 성적 끌림을 느끼고, 그레이섹슈얼은 드물게 또는 약하게 성적 끌림을 느낍니다. 에이섹슈얼은 성적 끌림 자체를 거의 또는 전혀 느끼지 않는 경우이며, 셋 모두 무성애 스펙트럼에 포함됩니다.

Q. 에이섹슈얼은 치료하거나 고쳐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에이섹슈얼은 질병이 아니라 성적 지향 중 하나입니다. 2001년 AVEN(무성애 가시화 네트워크)이 설립된 이래 국제적으로 정당한 지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2021년 기준 전 세계 13만 5천 명 이상이 해당 커뮤니티에 속해 있습니다.

 

FAQ

Q1. 에이섹슈얼도 연애를 하나요?

A. 네, 에이섹슈얼도 연애를 합니다. 성적 끌림과 로맨틱 끌림은 다른 개념입니다. 에이섹슈얼 중에는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고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고, 로맨틱한 감정도 느끼지 않는 어로맨틱 에이섹슈얼도 있습니다. [AVEN](https://www.asexuality.org/)에 따르면, 로맨틱 에이섹슈얼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연인 관계를 원하지만, 어로맨틱 에이섹슈얼은 로맨틱한 관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Q2. 에이섹슈얼은 자위를 하나요?

A. 에이섹슈얼도 자위를 할 수 있습니다. 성욕과 성적 끌림은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에이섹슈얼은 특정 대상에 대한 성적 끌림이 없거나 적을 뿐, 신체적인 성욕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성욕도 낮은 에이섹슈얼도 있습니다. 이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Q3. 에이섹슈얼은 치료가 필요한 건가요?

A. 아니요. 에이섹슈얼은 질환이나 장애가 아닌 성적 지향입니다. DSM-5에서는 성욕 관련 장애 진단 시 “스스로를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하는 경우”를 명시적으로 제외합니다. 본인이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치료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욕 저하가 갑자기 발생하고 이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면, 이는 에이섹슈얼이 아닌 다른 원인일 수 있으므로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찰수
찰수

성과 감정을 탐구하는 에디터입니다. 밤이면 살짝 감성적으로 변해버립니다. 현재 뉴스레터를 담당하고 있으며, 미드나잇 슈가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뉴스레터 전용 웹소설 《같은 밤을 보냈지만》 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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