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손끝에, 복사뼈에, 문득 끌렸다.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할 때, 뇌는 어느 쪽도 쉽게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 멈춘다.
도파민은 욕망을 켜고, 옥시토신은 머물게 한다.
섹스는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뇌는 이미 어떤 쾌락을 상상하고 있다.
보상보다 예측에 더 민감한 도파민이 먼저 반응한다. 편도체, 시상하부, 측좌핵— 자극에 민감한 회로들이 순식간에 불을 켠다. 그 불은 ‘지금 당장’의 쾌락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사랑은 좀 다르다.
같은 도파민을 쓰지만, 그 사람의 이름, 말투, 웃음, 눈썹 한쪽만으로도 복측피개부가 반응한다. 선조체, 전측 대상피질도 켜진다. 머물고 싶다는 감정에 불을 붙이는 회로다.
사랑은 흥분보다 방향에 가깝다. ‘이 사람을 향해 가겠다’는 결심 같은 것.
그리고 그 감정은 포옹과 눈맞춤, 같이 누운 밤처럼 지속되는 접촉 속에서 깊어진다. 그때 분비되는 게 옥시토신이다. 섹스 직후, 함께 누운 순간 뇌는 그제야 안심하며 유대를 굳힌다.
자극보다 연결, 흥분보다 신뢰, 도파민보다 옥시토신. 그게 사랑이라는 회로가 선택한 길이다.
프레리 들쥐와 산악 들쥐
프레리 들쥐(prairie vole)이라는 동물이 있다. 이들은 일부일처제의 대표 주자다. 한 번 짝을 이루면 거의 평생 함께 지낸다.
하지만 산악 들쥐(montane vole)는 다르다. 교미는 해도, 유대는 없다. 짝짓기가 끝나면 떠난다. 깔끔하게.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
바로 뇌의 옥시토신/바소프레신 수용체 분포다.
프레리 들쥐의 뇌에는 이 수용체들이 풍부하다. 애착을 만들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반면 산악 들쥐는 그 회로가 잘 안 켜진다.
결국 사랑과 욕망의 ‘뇌 배선도’는 같은 종 안에서도 놀라울 만큼 다를 수 있다.
구조가 그렇긴 한데…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감각. 도덕적이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뇌 입장에선, 그건 단지 두 회로가 따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연결을 만드는 방법은 있다.
다행히도, 뇌는 변화할 수 있다.
감정적 연결이 있는 섹스는, 쾌락 회로와 애착 회로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
섹스 도중에 눈을 맞추거나, 서로의 감정을 언어로 확인하는 행동은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면서 도파민 반응도 강화시킨다. 다시 말해, 사랑 있는 섹스가 항상 뜨겁진 않지만 뜨거운 섹스에 감정을 실으면 뇌는 두 회로를 연결할 수도 있다.
도파민은 반짝 켜지고, 옥시토신은 천천히 쌓인다. 하나는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고, 다른 하나는 반복 속에서만 열리는 회로다.
그래서 연결하려면, 자극이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려는 의도가 필요하다.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기본 세팅은 분리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중심 잡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복사뼈에 끌리는 본능.
나는 매번,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 멈춘다. 가끔은 휘청이고, 어쩔 땐 둘 다 놓쳐버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주 가끔 – 누군가의 눈을 보며 섹스를 할 때, 뇌가 둘 다 이해해주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언제 또 그런 사람, 그런 섹스를 만날 수 있으려나…🙄
- Aron, A. et al. (2005) : Reward, Motivation, and Emotion Systems Associated with Early‑Stage Intense Romantic Love
- Insel, T. R. & Young, L. J. (2001) : The Neurobiology of Attach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