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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아닌 바람? 폴리아모리와 ENM의 심리학

바람 아닌 바람? 폴리아모리와 ENM의 심리학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 진짜 가능할까? 35개 연구 메타분석으로 본 윤리적 비독점 관계의 만족도와 질투, 그리고 사회적 편견.

며칠 전, 나는 한 여자와 잤다.

연기를 내뱉으며 그녀가 말했다. “나 폴리아모리야.”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윤리적 비독점’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프롤로그

며칠 전, 나는 한 여자와 잤다.

술자리에서 만났다. 대화가 잘 통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까지 갔다. 끝나고 나서 우리는 나란히 누웠다. 그녀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3년 전에 끊었는데, 그날따라 한 대 얻어 피웠다. 이상하게 그러고 싶은 밤이었다.

연기를 내뱉으며 그녀가 말했다.

“나 폴리아모리야.”

단어는 알고 있었다. 글로 수십 번은 접했다. 여러 사람과 동시에 연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근데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녀가 덧붙였다. 지금도 만나는 사람이 두 명 더 있다고.

나는 조금 놀랐다. 근데 이상하게 불쾌하진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만약 이 사람이 더 좋아지면, 나는 질투심이 날까?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상상하면, 뱃속이 뒤틀릴까?

그리고 더 이상한 생각. 그게 뒤틀리지 않으면, 나는 이상한 걸까? 🙃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윤리적 비독점’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일부일처는 자연스러운 걸까? 🤔

우리는 대부분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고 배운다.

초등학교 때 읽은 동화책에서 왕자는 공주 한 명만 사랑했고, 드라마 속 주인공은 삼각관계에서 결국 한 명을 선택했다. 결혼식 서약에는 “오직 당신만을”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고, 바람은 용서받지 못할 배신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정말 일부일처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일까?

진화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질문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일부는 인간이 pair-bonding, 즉 짝짓기 결합을 하는 종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두 부모의 협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우리는 한 명의 파트너에게 정서적으로 결속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반면 인류학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전 세계 1,231개 문화를 조사한 Murdock의 연구(1949)에 따르면, 그중 84%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거나 실천했다. 일부일처제는 오히려 소수였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조금 안심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어쩌면 ‘자연스러움’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 위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윤리적 비독점이 뭔데?

ENM은 Ethical Non-Monogamy의 약자다. 한국어로는 ‘윤리적 비독점’ 또는 ‘합의된 비독점(CNM, Consensual Non-Monogamy)’이라고 부른다.

핵심은 간단하다. 모든 당사자의 동의 하에 한 명 이상의 파트너와 로맨틱하거나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

바람이나 불륜과 다른 점이 바로 이거다. 바람은 숨기고, ENM은 말한다. 바람은 배신이고, ENM은 합의다.

2024년에 발표된 스코핑 리뷰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209개의 ENM 관련 연구를 분석했다. ENM 관계의 핵심 요소로 꼽힌 것들:

존중 · 동의 · 신뢰 · 소통 · 유연성 · 정직

ENM은 하나의 형태가 아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유형 특징 정서적 관여
폴리아모리 여러 사람과 로맨틱+정서적 관계 높음 (다중 사랑)
오픈 관계 주 파트너 + 다른 성적 관계 주 파트너에게 집중
스윙 커플이 함께 다른 이들과 성적 활동 최소화 (레크리에이션)

Conley와 Piemonte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폴리아모리와 스윙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오픈 관계 참가자들보다 관계 만족도, 헌신도, 열정적 사랑, 신뢰 모두에서 유의미하게 높은 점수를 보였다.

ENM이라는 하나의 단어 안에도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스펙트럼 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과 욕망을 협상하고 있다는 것을.


왜 사람들은 폴리아모리를 선택할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왜 굳이? 한 사람만 사랑하면 되잖아. 🤷

심리학에는 ‘자기결정이론’이 있다. 인간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을 추구한다.

“나는 한 사람에게 모든 걸 기대하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어요.”

심리학자들은 이걸 ‘욕구 다양화 충족(diversified need fulfillment)’이라고 부른다.

2021년 Frontiers in Psychology 연구, 미국 성인 싱글 2,034명 조사 결과:

비독점 연애 탐색 경험 추이

2014

21%

2024

31%

Match 2024 Singles Report

2024년 Match의 미국 싱글 리포트에 따르면, 10년 만에 10%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숫자만 보면 ENM이 점점 주류로 편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질투는 어떻게 되나? 😶

ENM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 이거다. “질투 안 나?”

나도 그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자는 걸 상상하면,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폴리아모리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일부일처 관계에 있는 사람들보다 낮은 수준의 질투를 보고한다.

그리고 폴리아모리에는 질투의 반대 개념도 있다. 컴퍼전(Compersion).

컴퍼전은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이다. 🧐

애착 유형과 ENM

Morrison 등의 2013년 연구, 390명 참가자 대상 애착 유형 비교:

애착 유형 비교

안정 애착

폴리

52%

모노

44%

회피 애착

폴리

10%

모노

19%

Morrison et al., 2013 (n=390)

폴리아모리 집단에서 안정 애착 비율이 더 높고, 회피 애착 비율이 더 낮았다.

이건 직관과 반대되는 결과다. “여러 사람과 사귀는 건 친밀함을 회피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데이터는 오히려 반대를 가리킨다.

어쩌면 ENM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친밀함이 두려운 게 아니라, 오히려 친밀함을 더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폴리아모리 사람들은 행복할까?

이게 결국 제일 중요한 질문이다.

2025년 메타분석, 35개 연구 종합 결과:

“윤리적 비독점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일부일처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동등한 수준의 관계 만족도와 성적 만족도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동등. 더 높지도, 더 낮지도 않다.

관계 만족도를 결정하는 건 관계의 ‘형태’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다.

사회적 편견

OPEN의 2025년 설문조사, 65개국 5,885명 대상. 결과:

비독점 연애가 겪는 현실

차별 경험

61%

편견 스트레스

54%

OPEN 2025 (65개국 5,885명)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의료 서비스에서 편견에 부딪히는 경험들.

2025년 Archives of Sexual Behavior 연구에 따르면, ENM을 밝힌 경험이 있는 모든 참가자가 “실제 거부 또는 예상되는 거부”를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씁쓸했다.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것.


마무리

며칠이 지났다.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보자고. 나는 좋다고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모르겠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상상하면 뱃속이 뒤틀릴지. 아니면 의외로 괜찮을지.

ENM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일부일처가 유일한 ‘정상’이 아니라는 것. ENM 관계도 신뢰와 소통이 있으면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 질투는 관리 가능한 감정이고, 심지어 그 반대 감정도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고,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다.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존중, 동의, 신뢰, 소통, 정직.

다음 주에 그녀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질투 안 나냐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리고 그녀의 대답에 따라, 내 사랑의 정의가 조금 더 넓어질지도 모르겠다.

 

FAQ

Q1. ENM과 바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ENM(윤리적 비독점)은 모든 당사자의 동의와 합의 하에 다수의 로맨틱/성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반면 바람(불륜)은 파트너 몰래 또는 동의 없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핵심 차이는 ‘동의’와 ‘투명성’입니다.

Q2. ENM 관계에서도 질투를 느끼나요?

네, 느낍니다. 다만 연구에 따르면 ENM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일부일처 관계에 있는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낮은 수준의 질투를 보고합니다. 폴리아모리 커뮤니티에서는 질투의 반대 개념인 ‘컴퍼전(compersion)’도 경험한다고 보고합니다.

Q3. ENM 관계는 일부일처 관계보다 만족도가 높나요?

2025년 메타분석에 따르면, ENM 관계와 일부일처 관계의 관계 만족도와 성적 만족도는 통계적으로 동등합니다. 만족도를 결정하는 건 관계의 형태가 아니라 소통, 신뢰, 존중 등 관계의 질입니다.

  • Gupta, K. (2024). A scoping review of research on polyamory and consensual non-monogamy. Journal of Family Theory & Review.
  • (2025). Countering the Monogamy-Superiority Myth: A Meta-Analysis. Journal of Sex Research.
  • Morrison, T. G., et al. (2013). Attachment styles in polyamorous and monogamous individuals. Chapman University.
  • Moors, A. C., et al. (2021). Desire, Familiarity, and Engagement in Polyamory. Frontiers in Psychology.
  • OPEN (2025). 2025 Community Survey Report.
  • (2025). Experiences of Disclosing Non-Monogamy. Archives of Sexual Behavior.
찰수
찰수

성과 감정을 탐구하는 에디터입니다. 밤이면 살짝 감성적으로 변해버립니다. 현재 뉴스레터를 담당하고 있으며, 미드나잇 슈가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뉴스레터 전용 웹소설 《같은 밤을 보냈지만》 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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