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BDSM을 할까?

“찰수, 너 본디지 하면 예쁘게 묶일 얼굴이야.”

한 친구가 무심히 던진 말이었다. 농담인지, 은근한 고백인지 분간은 안 됐지만,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예쁘게 묶인다는 건 무슨 뜻이지?’

‘묶이는 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건가?’

그때부터 이상하게,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사람들은 왜 묶이고 싶어할까? 그리고 왜,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묶고 싶어할까??

사람들은 왜 BDSM에 끌리는 걸까?

뇌는 고통과 쾌락을 구분하지 않는다

고통과 쾌락이 뇌에서 공통된 경로를 통해 처리된다는 사실은, BDSM을 단순한 취향이나 취미로만 보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불쾌하다고 여기는 자극조차 특정한 맥락에서는 쾌감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BDSM 상황에서의 통증은, 예상 가능하고 통제된 상태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고통’이 아니라 ‘감각적 몰입’으로 전환된다.

해석이 달라지면, 감각도 달라진다.

• 쾌감 회로의 활성화된다.

BDSM 중 도파민, 엔돌핀, 옥시토신이 증가하며, BDSM 몰입 중에 시간 감각을 잃고 자기 경계가 흐려지는 ‘서브스페이스’나 ‘돔스페이스’와 같은 황홀한 몰입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 스트레스가 자극으로 바뀐다.

플레이 중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수치가 오르지만, 활동 후엔 정서적 안정과 긍정 감정 점수가 유의하게 상승했다. 장거리 달리기 후 ‘러너스 하이’를 느끼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서 스릴과 쾌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 고통이 쾌락으로 바뀌는 회로

BDSM 플레이 직후, 복종자들은 뜨거운 자극을 더 천천히 아프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평소에도 BDSM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전반적으로 통증을 덜 민감하게 느낀다.

• 통제된 고통은 오히려 친밀감을 높인다.

BDSM에서의 고통은 ‘내가 원해서 겪는 고통‘이다. 참가자가 고통의 원인을 통제할 수 있을 때, 그 고통 은 덜 무섭고 덜 아프다. 파트너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복종자는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고, 관계는 더 친밀 해진다. 이건 강압이 아니라 합의이고, 폭력이 아니라 연결이다.

욕망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어떤 성적 취향은 자라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BDSM에 대한 흥미는 생애 초기에 경험한 감각, 관계, 학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가설이 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 따르면 BDSM에 대한 흥미는 꽤 이른 시기, 종종 15세 이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즉, 나도 모르게 오래전부터 길들여진 감각이, 지금의 욕망을 이끄는 셈이다.

• 우연이 만든 연결고리

반복 노출을 통해 비성적 자극(예: 발, 속박, 특정 의상 등)이 성적 흥분과 연결될 수 있다. 1960~70년대 연구에선, 무릎 길이 부츠를 신은 나체 여성 사진을 반복 노출한 결과, 여성 신발만 보여줘도 흥분 반응을 보인 남성 참가자들이 있었다.

• 성적 조건화의 시작점

정조대 이미지나 페티시 웹사이트를 보며 자위한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 이미지에 성적으로 끌리게 만든 사례가 있다. 처음엔 우연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연이 반복되면서, 뇌는 그 자극을 성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 성적 각인의 흔적

양육자의성격(지배적, 복종적)이나 외모(체형, 목소리 등)가 무의식 중 성적 선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남성의 경우, 이런 각인의 영향이 더 일찍,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다.

SM에 대해 흔히 퍼져 있는 오해들

최근의 연구들은 BDSM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인간의 감각, 학습, 진화적 본능, 그리고 뇌의 보상 회로가 모두 맞물려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그거 병 아니야?”

BDSM은 병리적이고 금기시되는 활동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벨기에 연구에서는 응답자의 47%가 한 번 이상 BDSM 관련 활동을 해본 적이 있고, 22%는 관련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즉, 생각보다 훨씬 흔하고, 특히 젊은 세대와 비이성애자 사이에서 흔히 이루어진다.

• “그거 정신질환 아냐?”

과거에는 사도마조히즘이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는 일상생활에 심각한 스트레스나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진단 기준을 충족한다고 본다.

실제로는 BDSM 실천자들이 비실천자보다 더 개방적이고, 안정적이며, 정서적/신체적 웰빙이 높은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ICD-11(국제 질병 분류)에서는 강압적인 성적 사디즘 장애만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합의 기반의 BDSM은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했다.

• “어린 시절에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냐?”

일부연구에서는어린시절학대와 BDSM 간 상관관계를 언급했지만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모든 사람이 트라우마를 겪은 것도 아니며, 오히려 많은 참여자들은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경험하 고 있다.

실제로 BDSM에 대한 흥미는 15세 이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단순히 자극과 쾌감이 연결되는 조건화 과정의 일부일 수 있다

나는 아직 BDSM이 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그건 폭력보다는 정교한 연결이었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 나를 꽁꽁 묶는다고 하면 얼떨떨할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점점 더 확실해진다. 그 안에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쾌락의 언어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

나도 묶이다 보면, 아니, 예쁘게 묶이다 보면… 그 반복 노출이 성적 조건화가 되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